일곱 명의 맹인이 코끼리를 만났다, 2010 

Embossing on Zinc plate, Iron table, 40x60x90cm each (6pcs) 


다섯 명의 장님이 길을 가다 코끼리를 만났다. 한 맹인이 말했다. ‘이건 큰 기둥인걸. 가죽으로 된 큰 기둥. 크고 단단해’. 한 맹인이 말했다. ‘이건 종잇장처럼 크고 넓은 걸.’ 한 맹인이 말했다. ‘암석처럼 거대해!’. ‘촉각’ 하면 떠오르는 우화의 하나이다. 성경 속에서 도마는 자신의 스승의 부활을 믿지 못했고 거기에 손을 넣어 만져보고야 믿었다고 한다. 보고 만져지는 증거를 원했던 것이다. 증거는 일종의 지표이다. 무엇이 진실일까? 무엇이 도마에게 확신을 주었을까? 촉각으로 느껴지는 건 믿을만한 것일까? 여전히 맹인의 코끼리 탐구는 아닐까? 여기서 나머지 두 명의 맹인은 너와 나이다.● 2010 

Seven Blind Men; 우리가 궁극적으로 진리에 도달함을 막는 7개의 막을 뜻하며, 눈 앞과 뒤에 존재하지만 그것에 눈길을 주고 손길을 주어 읽고자 하였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 작업으로 관객이 산책하듯 사이를 돌며 들여다보는 형태로 구성된다. ● 2013  

테이블 형태의 이 시리즈 작업들은 맹인들의 점자책같이 만지고 느낄수 있는 텍스트, 혹은 점자책 형태의 지식의 테이블로 된 작업으로, 깨어진 텍스트들로 이뤄진 2010년부터 지속적으로 다른 소주제로 이어지며 계속되는 작업들이며, 이 작업이 이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P.S ● 「7명의 맹인」은 글자를 읽지 않고 만진다. 눈으로 읽고 이해하는 자는 만져야 전해지는 마음의 전언을 끝내 받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깨진 글자, 뒤집힌 글자, 글자 아닌 글자, 거의 지워진 글자, 당신이 더듬어서 쓰다듬고 어루만져야 나타나는 글자이다. 나타남과 사라짐 사이에서 살아가는 마음을 읽고 보고 싶은 자의 글자 혹은 노래. 나는 눈을 감고 내가 맹인이었을 때 네가 전해준 사연을 가만가만 떠올린다.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지나갔을 것이다. 당신의 침묵을 나는 끝내 읽을 수 없었다. 나는 당신을, 당신의 마음을 알고 싶어 더듬더듬 만진다. ■ 양효실

철의 도시에서, 2018 

Emboss & Ink on stainless steel, 130×85cm each (3pcs) 


때로 철은 무표정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잠식된 회색 도시와 함께, 거대도시 속의 한 요소로 축소된 현대인의 소외가 느껴지게 한다. 결핍과 단절감. 인간들을 포괄하기보다는 반사하는 빛, 작품에서 금속 바탕 면의 번득임은 현대 도시의 속성과 철이라는 소재 간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 2009 

내가 작업해본 경험으로 스테인리스 스틸은 심지어 따뜻함까지 아우르는 아주 다양한 색감과 온도를 갖고 있다. 그림자 즉, 음각만으로 남은 - 스테인리스 스틸 작업이다. 작업은 사진을 찍어 현상하여 판에 부식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 2011 

작가들은 때로 그들이 선택한 곳에 대한, 그들이 속한 곳-자연, 환경, 사회, 문화-그것들이 놓인 일상에의 관심 을 표현하여 작업한다. 그리거나 공간에 이름을 새겨주고,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 기억, 기록하여 보관하고 또 는 그 자국을 새겨 넣는다. 철의 도시에서 일상을 찍는다. 포항, 포스코와 그 안을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사람으로 이뤄진 이야기 ‘포항, 철의 도시’를 표현했다. ● 2018  

The Room #15 바벨에서 내려다 보다, 2007-2010 

Emboss & Ink on stainless steel, 120×640cm 


이 작품은 작품 ‘Reading a City’(2007)와 ‘바벨에서 내려다 보다’(2008) 등이 포함되어 있다. ‘바벨에서 내려다 보다’(2008-10)는 3개의 도시 전경으로 이루어진 작업으로 ‘The room #15’의 일부이기도 하다. 화면의 오른쪽은 초대형 기업의 꼭대기 층에서 내려다본 장면이다. 어느 날, 나는 대기업의 꼭대기 층에서 일종의 심사를 하고 있었고 많은 그림들이 뽑히거나 떨어졌다. 거대한 높은 건축물 꼭대기. 거기서 내려다보는 시선에 신경이 쓰였다. 내려다보는 시선에 흥미와 불편함을 동시에 느끼며… 그 건물에서 내려다본 점심시간의 광경 중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갑자기 몰려나온 사람들. 고층빌딩에서 내려다본 샐러리맨들은 가스등을 쫓아가 는 하얀 나방들처럼, 빅브라더의 사이렌에 맞춰 어디론가 떼 지어 가는 ‘죠지 오웰의 1984년’의 그들처럼, 내 손 에서 휙 걸러지는 종잇장 취급되는 그림들처럼 아무 힘이 없어 보였다. 그 안의 삶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랬다. 그곳이 바벨이리라. 저 아래, 그 안에 무수한 작은 도시인이 있다. 건조하고 무표정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잠식된 회색도시와 함께, 거대도시 속의 한 요소로 축소된 현대인의 소외가 존재한다. 그곳의 정점에서 내려다본 우리 는… 작은 도시인! 중앙의 작품은 도시의 매머드 빌딩 숲 사이의 길에서 올려다본 광경이다. 숲을 이룬 빌딩의 가 운데 골짜기는 깊다. 화면의 왼쪽 작품은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동양 최대 유비쿼터스 건물임을 자랑하는 건 축물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지형을 거대한 매머드 건축물, 미래를 상징하듯 유리와 스테인리스 스틸 구조물 이 어우러져 그 아우라의 위력에 우리가 눌려버릴 듯한 웅장한, 온통 건축 잡지에서 멋있다고 요란하던 그 건물 은 그야말로 땅을 갈아 지형도 바꾼 스펙터클 그 자체이다. ● 2011 

‘Reading City’(2007-10)는 네 개의 도시 전경으로 이루어진 작업으로 ‘The room #15’의 일부이기도 하다. 가장 오른쪽 장면은 북경의 한 건물서 본 새벽녘의 풍경이다. 그곳은 당시 온통 올림픽 준비에 들뜬 도시였음에 도 불구하고 새벽의 모습은 동트기 전의 고요함에서 왠지 모를 어색함이 느껴졌다. 고층건물과 같이 보이는 높이 솟은 공장의 굴뚝, 그곳 어디에서나 느껴졌던 생뚱함이 슬며시 탈을 벗는 듯한 장면을 잡고 싶었다. 바로 옆 작업은 강남 도심대로에 끝없이 서있는 감시카메라들을 그것의 본원인 법원 표시와 함께 찍은 장면이다. 현대판 판옵티콘 장치이다. 단 하나의 시선만으로 모든 것을 영구히 볼 수 있는 판옵티콘의 도식은 그 특징 중 어느 것도 잃 지 않은 채 현대 사회 전체로 확산되어 있다. 판옵티콘 장치는 끊임없이 대상을 바라볼 수 있고 즉각적으로 판별 할 수 있는 장치이다. 그것의 예는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이러한 교통 감시카메라는 물론 공공장소와 개인장소의 CCTV, 심지어는 회사의 출근 체계며, 인터넷, SNS까지 ‘네가 어제 한 일을 나는 다 알고 있다.’ 푸코가 분석한 미시권력은 푸코가 예견한 것보다 훨씬 더 미세하게 사회 전체에 널리 퍼져 있다. 왼쪽 두 작업은 서초구청 홈페이지에 있는 서초구의 모습과 테헤란로의 건널목 점심 즈음의 모습을 담았다. ● 2011 


그 날 이후_숭례문 After That day, 2008-2010 

Emboss & Ink on stainless steel, 80×120x5cm each (2pcs) 


이 작품의 배경은 글자 그대로 숭례문 참사 그날 이후의 기록이다. 숭례문의 죽음, 화재 소식을 본 순간 머리에 스친 생각은 분노와 슬픔이었다. 그 사건은 그 아픔은 근원을 잃은 상실이고 상처이고 깊이 모를 절망이었다. 뒤늦게 간 ‘그 곳_숭례문’에는 장막과 철근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언제나 그냥 거기에 있을 것 같았던 숭례문은 없었다. 몸이 떨렸다. 회한과 애도와 그리고 분노. 그러나 그곳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저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었다. 2001년 미국의 9 · 11의 현장이 생각났다. 강렬한 충격을 주었던 거대한 파괴의 현장, 그 깊은 구덩이 만큼이나 큰 슬픔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우리 안의 또 다른 모습으로 인해 파괴된 현장만이 또 거기 있었다. 그 해 겨울 나는 ‘오색의 공 간 그리고 나’라는 전시에 ‘서방西方-흰색’ 꼭지로 참여하고 있었다. 전통적 방위 개념 중 하나인 ‘서西’는 죽음을 뜻하고 하얀색의 방위이다. 그 전시기간 중 숭례문은 화염에 휩싸였고, 멍한 가운데 나는 결국 그에 대한 진혼곡을 썼다는 느낌이 들었다. ● 2010 

外 <그 날 이후의 기록 시리즈> 그날 이 후 시작한 프로젝트로 작업했다. <그날 이후의 기록>들은 3-6면의 제단화 형식으로 스테인레스 스틸과 렌티큘러 작업이 조합된 구성으로 숭례문 참사를 기억하며 제작한 작품들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다시 쓰고 싶은 일지’이다. 국보 1호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숭례문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어버린 그 참사의 현장은 지금 재건의 장소로 변화되었고 상처를 딛고 일어나려는 의지의 기운을 표현하는 역사적 사건과 도시에 대한 기억이자 기록이다.  

숭례문, 그 날 이후의 기록_20090210, 2009 

Emboss & Ink on stainless steel, Lenticular screen on LED light box, 110×55x3.5cm each (3pcs) 


이 작품은 아픔을 딛고 선 희망을 상징한다. 작업은 세 면의 제단화 형식으로 스테인리스 스틸과 렌티큘러 작업 이 조합된 구성으로 숭례문 참사를 기억하며 제작한 작품이다. 3개의 작업 화면이 한 이야기를 이룬다. 2009년 2월 10일, 이 날은 숭례문 참사 1주기를 맞아 일반인에게 단 하루 숭례문 복구현장이 개방된 날이었다. 국보 1호 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숭례문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어버린 그 참사의 현장은 지금 재건의 장소로 변화 되었고 상처를 딛고 일어나려는 의지의 기운을 표현하는 역사적 사건과 도시에 대한 기억이자 기록이다.  

작품의 배경은 참사 1주기를 맞아 2009년2월10일 일반인에게 하루 숭례문 복구현장이 개방된 날이었다. 다시 찾은 그곳은 많이 차분해져 있었다.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의 기운이 슬픈 기운을 가르며 피어 나고 있었다. 그곳의 광경과 모인 사람들을 기록하듯 찍은 장면으로 여전한 안타까움과 아쉬움과 기대가 섞인다. 스펙터클이라 표현할 만한 복구 현장의 처연한 아름다움과 기록에 열중한 젊은이, 여전한 안타까움과 아쉬움, 깊 은 회환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구경하고 어떤 이는 열심히 사진을 찍고… 중앙은 숭례문을 뒤로하고 나오는 사 람들의 모습으로 죄책감과 안도감을 읽을 수 있다. 그러한 사람들뿐 아니라 상황 자체가 너무 못마땅한 노신사의 대조가 양쪽 이야기를 맡고 있다. 작업은 일종의 제단화 형식으로 3-4개의 작업 화면이 한 이야기를 이루어 완성하는 최근 몇 년간의 나의 방식을 취한다. 또한 도심을 중심으로 기록 작업으로 제시하는 내 또 다른 방식이기도 하다. 사진 이미지를 바탕으로 양쪽 두 면의 스테인리스 스틸과 중앙의 렌티큘러를 사용한 세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렌티큘러라는 재료는 쉽게 말해 어린 시절 과자봉지 안에 있던 ‘따조’다. 이리저리 두 개의 만화가 휙휙 바뀌어 보여지던 장난감. 미디엄 자체가 갖는 장난감적인 다중적 속성과 닮아있는 렌티큘러를 이용하여 스테인리스 스틸과 대비된 색 감과 속성을, 결핍과 단절감, 인간들을 포괄하기보다는 반사하는 빛, 작품에서 금속 바탕 면의 번득임은 현대를 기록하는 내가 선택한 스테인리스 스틸과 렌티큘러 두 매체 간의 공통점이다. ● 2009  

그날 이후의 기록, 

2010-11 Silk screen on paper, 110×320cm (5pcs) detail 

나는 사진 이미지를 내 작업으로 전환할 때, 가시적으로 또한 촉각적으로 각인의 과정을 드러내기 때문에 ‘기억의 형상화’라 하였다. 이 과정들은 나의 시각에서 채집되고 사진으로 형상화된 기억과 기록이 흔적에서 각인으로 옮아가는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것으로 사진의 지표적인 면에서 출발하여 흔적과 각인을 강조하였다. 빛이 그린 그림인 사진은 흔적이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의미를 자국을 남기는 나의 작업은 각인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렇게 구현된 화면은 내가 최초에는 눈치채지 못했던 사진이 가진 층위의 다른 표현과 마찬가지로, 불명료함과 익명성 등을 내포하고 있었다. 따라서 바르트의 충고에 힘 입어 기표보다는 ‘기의’에 집중하고자 하였다. 또 다른 방식인 감광된 실크스크린은 신문의 사진 기사처럼 조금은 가볍고 시사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실크스크린은 팝 아트에서 볼 수 있는 가볍고 경쾌한 이미지로부터 사건이나 죽음의 어두운 이미지에 이르기 까지 인쇄하는 사람의 힘, 숙련도, 찍는 재료인 스크린 잉크의 농도 등에 따라 아주 다른 결과물을 생산한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사람의 손이 미칠 수 없는 과정에서 오는 미묘한 비켜남이다. 사진과 텍스트에 기억을 매개로 한 작업을 해석한 기억, 기록, 흔적 등의 개념들로 전이해 가는 나의 과정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하였다. 나는 부식된 판 자체를 제안하기도 하고, 이를 실제로 찍어낸 이미지와 대비시키기도 하였다.  

통의동에서 길을 잃다, 

2009-12 Emboss & Ink on stainless steel, 30×90x4cm each (3pcs) 


 삼청동을 거쳐 효자동, 가회동에 이르기까지. 경복궁역에서 청와대로 가는 길에 통의동이 있다. 경복궁을 사이에 둔 삼청동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여기서는 어디에서든 청와대와, 골목 모퉁이에서 ‘경찰아저씨’들과 만날 수 있다. 이름이 통의동인지도 몰랐던 그곳에도 최근 1-2년간 변화가 일고 있다. 통의동 골목길로 걸어 들어가 카메라로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을 구석구석 찍는다. 이면 도 로로 쓰이는 자동차 지나는 큰길을 제외하면 길고 곧은길이 없어 좋다. 골목은 언제나 정겹다. 숨바꼭질하기 딱 좋은 동네. 거기에 요새 갤러리들이 들어서고 있다. 작가들은 그런 골목길을 그리고 문화 공간들이 적절히 들어 있는 아지트 같은 장소로 그냥 놔두고 싶어 한다. 잃어버린 인사동, 삼청동의 옛 모습을 기억하며. 그런데 혹, 통의동의 변화를 몰고 오는 우리가 맨 먼저 상업화, 대중화의 물꼬를 트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 2009 최근 몇 년간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 독특한 무늬를 이루는 동네들이 사라지는 속도를 빨리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문화적이라는 미명 아래 그 본래의 모습이 사라지고 우아함으로 포장한 상업성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 인문학자는 “서울에 살다 보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 커다란 단절이 일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한 개인의 정 체성이 그가 산 공간과의 관련 속에서 구성된다면 나는 완전히 분리된 두 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지도 모른 다. 서울에 살 때 나는 과거를 거의 떠올리지 않고 살았다. 미래를 향해 바쁘게 달리는 서울은 기억상실의 도시가 되었고 서울에 살던 나도 공간 체험의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었다.”라고 한탄하였다. ● 2011  

통의동에서 길을 잃다, 통의동에서 길을 잃다, 

2009-12 Emboss & Ink on stainless steel, 60×60x5cm each (3pcs) 


대부분 단층에서 4층을 넘지 않는 높이의 건물로 이루어진 통의동도 이제 서서히 그 모습을 조심스레 바꿔가고 있다. 문화 예술인들이 모여들어 자신들의 색깔을 가진 조용한 동네를 이루고 키워간다. 작가와 갤러리, 책방, 디자이너, 작업실, 문화 연구소, 가구카페 등이 자리잡고 있다. 현대의 문화, 일상, 대중은 서로 맞물려있다. 아마도 서로 소외되었기에 이전 세대들보다 더 급속한 속도로 서로를 더욱 탐하는 듯하다. 그래서 먼저 정착한 그들은 전에 다른 곳에서도 그랬듯이 대중과 그들이 데려오는 거대함이 그 곳을 잠식할까를 걱정하고 있다. 서로 탐하면서 멀리하고 싶어하는 그 고리를 표현하기에 적당한 장소가 바로 그 곳인 때문이다. ‘문화’인인 작가들은 그들이 선택한 ‘일상’의 (곳)에 대한 작업을 하여 일상을 공유하는 ‘대중’과의 만남을 시도한다. 나는 그들이 속한 곳 -자연, 환경, 사회, 문화 - 그것들이 놓여진 일상에의 관심을 표현한다. 그리거나 공간에 이름을 새겨주고,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 기억, 기록하여 보관하고 또는 그 자국을 새겨 넣는다. 통의동에서 일상을 찍는다. ● 2010 

<통의동에서 일상을 찍다>는 예술인들의 고급문화행위가 어떻게 대중의 일상과 소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시작된 전시로 나도 기획하고 전시에도 참여하였다. 오래된 고유의 분위기가 아직 남아있는 통의동 일대에 이러한 의문을 가진 작가들이 끼어들기를 시도함으로써 예술하는 행위가 동시대를 읽고 파악하고 그 사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대중과의 소통의 끈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는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문화의 긍정적인 힘이라고 생각한다. ● 2009  

Reading City-Beijing, 2008-11 

Emboss & Ink on stainless steel, 120×60x5cm each (2pcs) 


작품 속 장소는 베이징의 ‘제2의 798’이라 불리는 북경의 광슌 북로에 있는 옛 화약창고 거리의 초입이다. 798이란 명칭은 베이징 따샨즈(大山子) 거리에 위치한 798공장 자리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곳은 1950년대 코민테른 기간 동안 소련의 재정 원조로 건설된 산업단지였다. 바우하우스 양식으로 세워진 공장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초기 비밀 군수시설로 사용되었지만, 1990년대에 이르러 이곳은 중국 예술가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2005년 즈음부터 이곳에 이주한 최초의 예술가들이 798예술지구를 떠나기 시작하였다. 작가들의 작업장 근처로 작가들의 편의시설로 카페, 대중의 적당한 품위에 걸맞은 음식점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마치 미국의 소호가 그랬듯이, 삼청동이나 북촌 부근이 그랬듯이. 결국 작가들은 좀더 싼 곳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어 쫓겨나듯 그곳을 떠나 이주하게 된 것이다. 작품의 배경이 된 이 장소도 그런 798의 대안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이곳도 곧 798의 사정과 마찬가지인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오래된 화약창고들이 모여있던 동네가 작가들의 작업장으로부터 화랑들에 이어 점차 상업공간들로 변해가는 곳이 되었다. 작업에 등장하는 장소는 몇 남지 않은 옛 모습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창고였던 듯한 건물에는 유난히 긴 문들이 줄줄이 있고 이미 그곳에는 우리나라 화랑들도 자리해 있었다. 2007년의 베이징은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사판과 같았다. 

Reading City-Beijing 2007, 2008-11 

Emboss & Ink on stainless steel, 100×72x4cm each (4pcs) 


지금 북경뿐 아니라 서울, 많은 도시들 역시 성공적인 도시재생사업이라는 명목 하에 거듭나고 싶어한다. 그러했다. 도시공간의 모든 것들은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도시공간은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릴 것이다. 강제적 망각의 과정을 통해 흔적이 없어지는 반면에, 도시 곳곳에서는 아우라가 넘쳐나고 있다. ‘일상적인 흔적’을 지니고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인위적 기억의 확장’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벤야민이 지적한 기술 재생산 시대에 영화 자본이 영화에서 만들어낸 ‘가상의 아우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장소 또는 흔적과 그리 맥락이 없는 심미화 작업이다. 문화적 또는 개인적 흔적을 지니고 있는 도시 공간 그 자체와 도시 공간의 하찮은 사물들이야말로 도시인에게 도시 공간과 관계해서 무의지적 기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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