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Flâneur; 도시의 산책자


나타남과 사라짐의 “사이”; 도시는 일상적인 친숙함을 매번 낯선 이방인의 태도로 경험하게 만드는, 심리적 밀도나 정서적 교감의 작용이 불가능한 무차별적인 공간이다. 대도시는 강철의 발명에 근거한다. 차갑고 단단하고 견고하며 세월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풍화나 퇴화와 같은 자연적인 삶의 변화를 겪지 않는 철과 철의 집적체로서의 도시에서 인간은 도시를 반복하지만 마음, 느낌, 성장과 죽음과 같은 일종의 자연으로서의 인간적 특성은 도시를 초과하는 잔여물이자 과잉으로 공존한다. 도시는 분명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도시는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인간적 정서나 서정성에 환원되지 않는 잉여를 갖고있다.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도시의 무시간성, 역시나 변화를 거부하는 철의 속성은 화학작용을 통해 내적 구조의 변화를 겪은 철의 표면이 일으키는 무늬, 세월의 흔적으로 인해 약화되거나 무화된다. 작가는 제거하고 비워내고 탈색시키는 과정을 통해 축적과 성장에만 매진하는 도시적 삶의 회로를 끊어버린다. 사실은 강철도 흙집처럼 부서지고 마모되는 물질일 수 있다는 사실을, 사실은 도시도 마음과 마음의 무늬를 담는 장소일 수 있다는 느낌과 결합해서 작가는 차갑고 견고한 도시를 ‘여성화’한다. 그녀의 작업은 일차적으로는 여성적이지 않다. 그녀는 일차적으로 남성적인 매체와 남성적인 이미지를 놓고 그것을 여성적으로 변형시키는 일관성을 보여준다. 철이나 나무를 다루는 그의 작업은 매체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주체의 힘을 요구하며 도시는 여성성을 배려하는 공간이 아니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에서 사라짐, 관계, 상처, 사랑의 장소를 만들어내는 그녀의 힘은 여성적이다. 사소한 것들은 사소하지 않은 것들의 사이에서 자라난다. 숨어 있는 것들을 가시화하고, 그것들에 다가가려 면 시각보다는 촉각과 같은 ‘사소한’ 감각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작가에게서 나는 가시성의 권력을 탈중심화하려는 사라짐의 힘, 노래를 듣는다. 당신은 소멸과 죽음의 존재에게만 들리는 노래를 듣기 위해서는 눈을 감아야 한다. ●양효실(미학) 2011 전시서문 중 


플라뇌르_도시의 산책자; 플라뇌르(Flâneur)는 한가롭게 거리를 거니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이다. 19세기 중반 거대한 도시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파리는 커다란 도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중세의 낡은 도시의 모습은 사라지고, 높은 건물들과, 넓은 도로, 고급스러운 카페와 레스토랑, 극장 등이 생겨났다. 도시 전체의 외향적인 모습이 변하면서 사람들의 터전도 변하였고, 그들의 생활도 낯선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변화하는 파리의 도시적 현상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가리켜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는 ‘플라뇌르( Flaneur, 산책하는 사람)’이라 지칭하였다. 김홍식의 작업은 이 시대의 ‘플라뇌르’로서 현대 도시가 겪고 있는 변화와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록하는데 에서 시작하여, 현대성이 실현되는 장소로서의 도시를 탐구하고 이해하고자 한다. ‘플라뇌르’로서 도시를 관찰하는 일은 객관성과 익명성을 요구한다. ‘플라뇌르’는 특정한 목적을 두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산책을 하듯 끊임없이 움직이는 도시의 순간을 포착하고, 왜곡되지 않은 모습으로 기억한다. 도시는 중심의 것에서 주변의 것으로, 관찰자는 주체적 위치에서 객관적 시선으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기억과 감성의 경험을 각인시킨다. ●민은주(NIA 디렉터) 2011 전시서문 중 


도시의 거리는 작업의 보고다; 작가들은 자신이 보고 읽은 도시의 얼굴, 사물의 피부를 재현한다. 사물을 대신해 말한다. 대도시에 대한 자신의 내밀한 작업은 거리를 걸으면서, 차창 밖으로 내다보며 만난 것들의 기억, 그 목록이다. 김홍식의 작업은 우선 사진으로부터 출발한다. 기억과 정보의 기록을 토대로 그 피부 위에 신속하게, 거의 직관적으로 도시를 판독하고 느낀 것을 침전물처럼 응고시켜 놓았다. 음각의 화면은 단독으로, 혹은 몇 개씩 이어져서 증식된다. 판은 보여주면서 동시에 사라지고 지워지고 흐릿해져 간다. 그러다 각도와 조명에 따라 다시 살아난다. 동시에 금속판의 물성이 극대화된다. 그것은 차갑고 견고하며 무척이나 예민하다. 그 예민한, 날 선 신경으로 촘촘해 보이는 표면을 녹이면서 침투한 선/산酸은 명료한 형상이 아닌 순간적으로 출몰하고 스러지는 이미지를 남겼다. 산에 의해 부식되어 음각만이 남아 기이하게 출몰하는 판/이미지는 눈을 감았다 뜨는 과정 중에 네거티브처럼 등장하는 이미지와 닮았다. 여기서 이 판은 판화를 찍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작품이 되는 의미 있는 판/화면/물질로 자리한다. 작가는 스테인리스 스틸의 표면이 지닌 금속성의 느낌, 예민한 부위, 회색조의 톤, 비가시적이며 불명료 함 속에 얼핏 나타나는 잔상 같은 이미지가 도시의 속성을 형상화하는데 효과적이라고 여긴 듯 하다. 이 네거티브와 포지티브 이미지, 있음과 없음, 이미지와 물질 등이 도시의 이중성 혹은 양면성의 속성과 겹쳐진다. ●박영택 (미술평론) 2008 전시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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