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âneur_Museum_Toledo, 2015 

Embossed work, Urethane, Ink & Silkscreen on Stainless steel, 130 x 80cm 


이 작업은 르네상스의 완벽함을 비틀었던 엘 그레코의 작업들이 박물관을 가득 채운 톨레도의 장면이다. 루브르 에서 관객들이 모나리자를 찾아가듯 톨레도 대성당에 가면 이곳을 간다. 대표작이자 인기작인 ‘의복을 빼앗기는 예수(El Expolio)’, 3m 크기의 걸작이 정면으로 보인다. 엘 그레코의 톨레도에서의 첫 작품이자,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돌며 오랜 경험을 거쳐 만든 그의 독특한 양식이 처음 보이는 걸작이다. 이곳 역시 유명 작업을 찾아가는 관람객들이 넘쳐나고 그들의 시선과 움직임 등을 표현했다. 작품들과 그를 향유하는 관람객들의 모습, 특히 저 붉은 옷을 입은 슬픈 얼굴의 예수의 모습과 이리저리 다니면서 흘깃 바라본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세월 만큼이나 대조적이다. 

Flaneur in Museum_Louvre, 2016-7 Embossed work

Urethane, Ink & Silkscreen on Stainless steel, 40×40cm 


스펙터클을 생산해 내던 그 여름 ‘루브르의 모나리자’ 곁을 둘러싼 상황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고 그래서인지 여러 버전으로 제작되었다. 사진으로 페인팅으로, 특히 아이들은 페인팅으로도 제작되었다. 초기 버전의 작은 첫 작품에 담긴 두 이야기를 따로 떼어 옴니버스처럼 제작하였다. 군중을 뚫고 모나리자를 자신의 카메라에 핸드폰에 담고 돌아서는 여자는 획득한 목표물을 가지고 의기양양 돌아서는 사냥꾼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골목길_성북동 2012 

Embossed work, Ink on Stainless steel, 60x40cm, 2015 


성북동 골목길프로젝트; 사람들에게 그들이 사는 장소의 지리적 역사는 그들 삶의 외양과 의미에 영향을 미친다. 그들이 살았던 장소와 지역은 그들이 속해있는 신체적이고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속성과 더불어 아는 것과 그가 보는 방식 등을 좌우하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역사에는 많은 기억들이 흘러가며 도시에 형태를 부여해 왔다. 그 기억들은 우리를 어떤 장소에 속하게 하며 다른 이에게는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기억을 담고 있는 바로 그 장소가 되게 한다. 장소의 본질은 외부와 구별되는 내부의 경험에 있다. 사라져가는 도시의 옛 골목은 그 공간과 도시인의 집합적 기억의 장소이다. 성북동골목길 프로젝트는 골목의 형태가 살아있는 강북의 오래된 동네의 골목길에서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작가들이 함께 미술체험_창작활동을 통해 서로의 감성을 교류하는, 지역사람들과 함께하는 소통 및 교류의 장을 꿈꾸는 프로젝트이다. 강북 지역의 고유한 문화예술적인 정취를 되살려지고 화랑 등 문화향유 공간들이 점차 늘어가나 그것과는 유리되어있는 지역주민과의 분화를 줄여보는 시도를 하는데도 그 의의가 있다. 일종의 장소 특정적 프로젝트로 나의 작업과도 연관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장소 협의가 된 성북천 광장이 위치한 성북동이라는 특정 동네를 리서치하며 카메라로 찍었다. 작가들의 눈에 비치고 채집한 장면들은, 그러나 주민들이 늘 지나다니는 그 장소이기도 하다.   


Reading City_ Beijing_2007

Embossed work, Ink on Stainless steel, 100x72cm, 2012-15 


2007년의 베이징은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사판과 같았다. 오래된 화약창고들이 모여있던 동네가 작가들의 작업장으로부터 시작했으나 화랑들에 이어 점차 상업공간들로 변해가는 곳이 되었다. 작업에 등장하는 장소는 몇 남지 않은 옛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곳이었다. 북경 뿐 아니라 서울, 많은 도시들 역시 성공적인 도시재생사업이라는 명목 하에 거듭나고 싶어한다. 도시공간의 모든 것들은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도시공간은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릴 것이다. 강제적 망각의 과정을 통해 흔적이 없어지는 반면에, 도시 곳곳에서는 아우라가 넘쳐나고 있다. ‘일상적인 흔적’을 지니고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인위적 기억의 확장’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벤야민이 지적한 기술 재생산 시대에 영화 자본이 영화에서 만들어낸 ‘가상의 아우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장소 또는 흔적과 그리 맥락이 없는 심미화 작업이다. 문화적 또는 개인적 흔적을 지니고 있는 도시 공간 그 자체와 도시 공간의 하찮은 사물들이야말로 도시인에게 도시 공간과 관계해서 무의지적 기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광화문 아리랑, 2016 

Lenticular screen on panel, 135×220cm 


김홍식은 스스로를 19세기 플라뇌르( flaneur :산책하는 사람)의 후예로 생각하면서 <도시 산책자> 연작을 통하 여 도시의 변화와 그 변화에 의해 퇴색되어가는 장소의 의미에 대해 탐색해왔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설어 보이 는 변화무쌍한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선택한 방법은 두 가지이다. 사진을 찍고 리스 필름으로 반전한 뒤 스테인리스 판에 전사한 이미지를 산으로 부식시키는 과정은 도시의 양면성과 차가움을 잘 드러낸다. 몇 장의 사진 시트를 겹쳐 놓은 렌티큘러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스쳐 지나가 는 순간 사라지는 이 환영적인 이미지는 빠른 속도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도시의 속성을 보여준다. 이번 출품작들은 서소문과 광화문이 위치한 각 장소의 과거 자료 사진과 작가가 촬영한 현재의 모습을 렌티큘러 로 제작함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공존시킨다. ‘그리다, 서소문’은 한양의 네 개의 소문(四小門) 중의 하 나인데 1914년 일제에 의해 철거된 뒤 복원되지 못한 서소문(=소의문)이 복원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염원이 담 긴 제목이다. ‘광화문 아리랑’은 여러 차례 수난과 복원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 광화문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1927년 일제가 조선총독부 청사를 경복궁 근정전 앞에 세우기 위해 광화문을 철거하기 전의 모습과 1945년 세 종로에서 연합군의 진주를 환영하는 인파와 최근 광화문 광장의 풍경을 결합하였다. 특정 장소와 그곳을 오가는 군중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이 작업들은 과거의 사건과 개인의 기억이 함께 스며들어 있는 역사적 장소의 의미 를 되새기게 한다. ● 2016 서울사진축제_서울新아리랑 도록_김소희(독립큐레이터) 글 중에서 

그리다_서소문, 2014 

Lenticular screen on panel, 135×220cm  


부제: 사라지는 서소문 살아나는 서소문; 서울역사박물관 의뢰로 천주교 한국교회사 연구소에서 자료를 도움받아 ‘서소문·동소문별곡展’을 위해 제작한 작품이다. ‘그리다’라는 의미는 ‘이미지 등을 그리다’라는 의미와 ‘그리워하다’라는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서소문의 옛 모습과 ‘시구 개정’ 후 사라진 서소문, 현재의 모습 그리고 내가 그려보는 서소문 이미지 등 4중의 이미지를 구성해 작업했다. 재구성해본 서소문은 이미 복원된 동소문의 모습과 비슷할 것이라는 설과 옛 사진을 토대로 하여 기복원된 동소 문과 숭례문에서 모티프를 전유하여 재현해 보았다. 특히 등장인물들은 서소문 복원 후 시민들의 모습을 가정하 여, 숭례문 복원 후 관람하며 향유하는 시민들 모습을 촬영하여 사용하였다. 이 작업을 하며 향후 서소문이 다시 어떤 모습으로든 복원되었으면 하는 염원을 담았다. 작업의 재료는 렌티큘러 스크린으로 다중의 이미지를 각도 에 따라 달리 보여줄 수 있는 재료이다.  

가리봉 모던타임즈, 2015 

Lenticular screen on panel, 140×210cm 


지금은 ‘디지털단지오거리’로 개명한 가리봉오거리는 공장, 벌집촌, 가리봉시장 등 구로공단 사람들의 생활 현장을 구석구석 이어주는 중심지였다. 가리봉오거리가 지켜본 그간의 역사에는 그들 삶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산업화와 민주주의의 역사가 생생하게 교차한다. 그만큼 그 역사는 크고 넓으며 깊고 무겁다. 경제사이자 노동사이며, 사회사이자 문화사이고, 도시사이자 정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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