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김홍식 Kim Hongshik

사진 이미지, 드로잉 등을 기반으로 평면 및 설치 작업을 하는 작가  김홍식은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를 졸업하였고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석사, 조형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자신을 ‘도시의 산책자 Flâneur’라 칭하며 도시를 산책하고 기록하며 도시와 그곳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삶을 투영해 낸다. 최근 몇 년 간 그는 ‘바라봄’이라는 행위의 극을 경험하는 미술관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작품으로 향하는 군중들의 시선들을 담아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안에서 ‘예술작품’이라고 규정지어진 오브제를 금빛 틀로 가치를 상징화, 영역화 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군중들의 시선을 자신의 ‘예술작품’으로 포착하여 다시 구성한다. 작품은 카메라로 이미지를 담아낸 후 주로 스테인리스 스틸 위에 부식하고 실크 스크린과 붓으로 그린 금색 안료 층 등을 마련하여 그림과 판화, 사진 등 복합적인 새로운 장르를 표현해내고 있다. 파라다이스 ZIP, 환기미술관 등의 개인전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의 국내 기획, 단체전에 참여했고, 바티칸, 홍콩, 시카고, 마닐라 등 해외 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Dialogue in Museum 

2017 

Painted ink, Urethane & Silkscreen on embossed stainless steel 

55×55cm 


작품의 주 소재가 된 작품은 인상파 여성화가인 베르트 모리조의 ‘요람’으로 당시에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성의 세계를 담아냈다’, ‘사실적이면서 더 사랑스러운’, ‘현대판 성모자상의 세속적 변환’ 등등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사랑하는 아기를 요람에 재우고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엄마는 작가 모리조의 언니 에드마이다. 모리조는 마네의 동생 외젠 마네의 부인이기도 하다. 모리조는 언니와 같이 코로에게서 그림을 배웠고, 후에 마네에게도 많은 영향을 받았으나 언니는 결혼 후 모리조와 달리 그림을 더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이 작품을 내 작업에 넣고 싶어서 오르세를 몇 번을 돌며 이 앞을 지날 엄마를 찾았고, 찾았다! 유모차를 밀며 산책하듯 가던 뒷모습이 아름다운 젊은 엄마는, 아니나 다를까 요람 앞에서 잠시 머물렀고 다가갔다. 왼쪽 르누아르의 ‘독서’는 그림 속 엄마와 그림 바깥 엄마 모두의 워너비 장면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대화 / Dialogue in Museum 

2015/2017 

Painted Ink & Silkscreen on Embossed Stainless steel, 

143x98cm 


전시의 취지를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린 작품이었다. 작품 속 장소는 국립중앙박물관 불교회화관이다. 이 곳은 연속적으로 괘불 전시를 하는데, 눈도 발걸음도 바쁜 다른 박물관에 비해 앉아서 큰 불화를 마주하며 감상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괘불은 본래 특별한 법회나 의식에 걸어두는 대형불화로 이 괘불은 그림 크기만 7m가 넘는다. 내가 그 곳을 찾았을 때 마침 파란 눈의 두 젊은이가 <보물 1257호 안성 청룡사 괘불>앞에 앉아서 괘불 속 석가의 포즈를 따라하는 듯한 제스쳐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날 그 곳에는 17세기에 나라를 구하고자 구현된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괘불 속 부처들과 멀리서 날아온 금발의 청년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 석가모니의 설법모임을 한 폭에 담은 작품에 이들도 같이 부처들의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듯했다. 파란 눈의 부처와 석가모니가 같이한 그 곳이 극락이 아닐까? 라는 맘으로 진열된 작품과 그를 향유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이 작품 속 괘불 안에 담긴 우리 선조들의 간절한 마음에 우리의 간절함을 더해본다. 





 Dialogue in Museum

2017 

Painted ink, Urethane & Silkscreen on embossed stainless steel 

55×55cm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하이스 왕립미술관에는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는 애칭을 가진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우릴 기다린다. 아름다운 그녀가 있기에 어울리는 장소이다. 그녀는 베르메르의 메이드로 간혹 그의 모델을 섰다고 전해진다. 그 모든 배경 설명을 무색하게 그녀는 매혹적이다. 내가 그녀를 만나러 갔을 때 그녀는 짙은 포레스트그린 벽지로 둘러 쌓인 방에서 그녀만큼 우아한 여성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의 어깨 너머로 우리에게 인사하는 듯하다. 그 관람객 여성은 이미 내 시선을 몇 번이나 잡은 여성이었다. 블라우스에 플레어 치마, 가죽케이스가 탐나는 라이카 카메라를 우아하게 슬쩍 메고 있는 그녀는 그 미술관에 어울리는 품격을 풍기며 조금은 느린 걸음으로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다. 관람객을 뮤즈로 삼곤 하는 내게 그녀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모델이었다. 그림 안과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두 여성이 그 날 내 작품의 뮤즈였다.





Flâneur in Museum_Louvre 

2016-7 

Painted Ink & Silkscreen on Embossed Stainless steel, 

150x118cm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듯한 니케의 자태 앞에 어찌 절로 탄성이 나지 않을수 있을까! 하지만 눈앞에 보고 싶었던 명작들을 두고도 핸드폰, 사진기의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보는 군상들! 모나리자, 니케, 밀로 섬의 비너스 등 미술사적 의미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 작품들이 그토록 유명하게 만든 것은 루브르에 소속되어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미술관에 있는 그림들은 모두 다 가치가 있는 그림인가? 그것의 가치를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 의 모습과 이리저리 다니면서 흘깃 바라본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세월만큼이나 대조적이다. 이 작품을 고른 이유는 니케 때문이다. 승리의 여신 니케! 우린, 이전 세대와 다른 눈을 가진 우리 신인류는 이전 세대들이 그러했듯 승리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Flâneur in Museum_Orsay 

2016/19 

Painted Ink & Silkscreen on Embossed Stainless steel, 

130x91cm 


오르세에서 만난 너무도 유명한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 앞 장면이다. 마네는 인상파화가라고 흔히 학교에서 배우지만 정확히는 인상파화가들과 '같은 시대' 작가라고 말하는게 맞을 것이다. 인상파화가라고 하기엔 이 그림처럼 짙은 윤곽선, 플랫한 색면 처리 등, 화면의 실험과 구현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에 집중했던 작가인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 광경은 우리가 가장 부러워하던 광경이다. 미술관에서 자유롭게 앉아서 둘러서서 그림을 감상하거나 그리거나 아이들을 옹기종기 작품 혹은 유물들 옆에 모여 앉히고는 그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는 이런 장면들. 명화 앞에서 탐정처럼 심각하게 관찰하는 학생들~~ 피리부는 소년 병사의 시선에 답하는 듯한 두 학생의 몸짓이나 태도에서는 또래 소년을 대하는 고만고만한 소녀들의 진지한 관심과 호기심이 보인다. 마치 동급생 남학생을 대하듯 여학생들은 그 그림에 동화되어 있는 듯하다. 안녕? 난 끌로드라고 해, 넌 누구니? 라며.. 최근엔 우리나라도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가면 그런 장면을 보기도 한다. 문 닫은 박물관을 떠올리며 우리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곧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대화 / Dialogue in Museum 

2017 

Painted Ink & Silkscreen on Embossed Stainless steel, 

105x140cm


작품 속 장소는 국립중앙박물관 3층 조각 공예관이다. 불교조각관에는 마침 많은 부처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부처상들이 벽장에 넣어져 유리밖에서 관객을 만나는 보통의 전시방식과는 다르게 전시장 중간 군데군데 놓여있어 그들 부처들 사이로 관람객들이 산책하는 듯, 향유하는 모습이 보였다. 관객은 그 사이를 거닐며 부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하다. 저 젊은이는 몸을 구부려 공손히 부처의 설법을 듣는 것일까? 철로 된 저 부처 그의 등에 뚫린 상처에 얽힌 얘기를 들으며 위로 하는걸까? 아님 위로 받고 있는 걸까? 그의 목에 걸린 수신기가 부처의 음성을 전하는 것은 아닐 터이지만. 진실을 향한 물음 그 이면의 삶에 대한 물음 등을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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