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신미경 Shin Meekyoung

한국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에서 순수미술 학사 및 석사과정을 마쳤고, 1995년에는 런던으로 유학을 떠났다. 런던대학교 슬레이드 미술대학 대학원(1998년)과 왕립예술대학(2017년)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고, 특정 문화와 예술에서 원래의 배경이 탈각되었을 때 흔히 나타나는 오역과 재번역을 탐구하는 조각 작품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아시아의 도자기에서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유물과 예술품을 비누를 이용해 재현하고, 그 과정에서 지역적, 문화적, 역사적 문맥 간 ‘번역’을 투영한다. 2019년에 영국 바라캇갤러리, 2018년에 아르코미술관과 우양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2013년에는 ‘올해의 작가상’ 4인에 선정되었다. 런던 헌치오브베니슨(Haunch of Venison) 갤러리(2010년), 주영한국문화원(2013년), 영국 국립공예디자인센터(2014년) 등 국제적으로도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뉴욕 아트디자인박물관, 대만에서 개최된 2013년 아시아 예술 비엔날레(Asian Art Biennial) 등을 비롯하여 다수의 단체전에도 참가했다.

비누로 새기다: 좌대 프로젝트(Written In Soap:A Plinth Project) 


기마상은 2008년에 카벤디쉬 광장의 빈 좌대 이야기를 그 당시 같이 전시하던 아시아 하우스 큐레이터에게 듣고 관심을 갖고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 알 수 있던 정보는 좌대 위에 적어진 “누구에 의해서 누구에 대한... 조각상을 언제 세웠다”가 전부였다. 현재 왜 작품이 없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남아있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조차 사막에서 길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 조각이 위치한 웨스트 민스터 카운슬에 질문하는 것부터 일은 시작되었다. planning permission을 받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고, 그들이 그 땅의 주인과 컨택을 하고 허락을 받고, 긴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 위에 있던 조상의 인물이 누구인가 알게 되고 그 인물이 악명 높은 인물이었음도 또한 알게 되었다. 악명과 유명의 차이는 세월의 흐름과도 상관이 있는 것이라서, 현재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한 나라로 살고 있으니 그 명암이 교차되지만 예전엔 서로 침략하는 사이였으니. 기마상의 주인공은 스코틀랜드를 정벌했던 컴벌랜드 공작이었는데, 백정이란 별명이 있었을 정도로 모든 사람들 다 처단해 버린 비정한 사람이었다. 그런 이유로 조각상이 내려간 건지, 아님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를 알아내는 데는 자료가 많지 않은 관계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여러 설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결론 내린 건 그 당시 납으로 만들어진 4개의 조각상 중에 하나였고, 환경적 문제로 내려가고, 사실은 다시 올라갈 계획은 그다지 없는 상태에서 내려 갔다는 설이었다. 그후 오랜 시간에 걸쳐 웨스터 민스터 카운슬과 땅 주인으로부터 허락을 받고 브리티쉬 카운슬에서 약간의 펀딩을 받았으나, 다른 쪽 펀드가 어려워서 지연되다가 2012년 2월에서야 제작에 착수할 수 있었다. 2008년부터 끌어온 프로젝트가 4년만에 착수된 것이었다. 제작 당시엔 이미지가 문제였는데 그간 찾아본 이미지에 의하면 그 조각상의 사진은 있을 리 만무했다. 다행히 컴버랜드 공작의 초상화들이 몇 점 나오고, 조각상이 제작된 다음해에 누군가에 의해서 그려진 카툰이 하나 발견되었다. 나중에 발견된 카벤디쉬 광장의 풍경화에 그 조각상이 찬조 출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 조각상의 원형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영국 런던 캐빈디시 스퀘어, 대만, 한국 등 3개국에 동시에서 진행되었다. 

트랜스레이션-비너스 soap, 

plinth 2002 

metal amateur,

200x90x90cm 


2000년 초에 런던에서 서울로 돌아와서 실물을 보고 작업할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 그때 미술사 도판 중에서 iconic하다고 느꼈던 작업을 스스로 그 포즈를 서고, 석고상으로 떠내어 원본을 만드는 작업을 하였고, 그렇게 생성된 또 다른 원본을 바탕으로 모각을 해나가기 시작하였다. 서양 고전 조각의 포즈와 내 자신의 몸이 합쳐진, 동양에서 나고 자라면서 서양미술을 공부하고 서양에 가서 동양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했던 것이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면서 융합되는 형태의 작업이 초기 상태이며 이 작업은 전시실에 뒷면으로 놓여 있었다. 처음 만들어진 1998년의 작품도 뒷면으로 놓아 전시하여 관람자가 뒷면을 보며 들어와서 앞을 보기 위해 한바퀴를 돌아야 했는데 그것은 도판에서 보여진 정면성, 타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일방적 전달과 대치되게 하기 위함이고, 관람자가 “현장에 있다”라는 측면이 드러나게 한 것이다. 현장에 있음을 오감으로 느끼게 하는 다른 요소는 향기였으며 질감과 향기, 사라진다는 속성 등등 비누의 많은 요소가 적합하였다.

Toilet Project 

2007 

 soap

25x15x10cm 

 

 2004년부터 캐스팅할 수 있는 비누를 발견하며 유물같은 형태의 iconic한 형태를 캐스팅[복제?]해 내어 그것들이 유일무이한 유물로 되게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대부분 미술관이나 갤러리들의 공중 화장실에 놓여졌고 비누들은 장식적 기능과 실용적 기능을 동시에 이행하였다. 이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 전시장으로 들어오면 비누란 기능은 상실하고 예술작품으로서의 성질만 보유하게 되었다.

Toilet Project 

2004 

soap,

25x20x73cm 

 

화장실 프로젝트로 처음 만들었던 작품으로 영국의 유물복원을 공부하는 학교이자 초현실주의를 서포트했던 West Dean College, Edward James foundation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갔다가 시작되었다. 동양 유물의 형태 비누를 공공 화장실에 설치하고 비누로 사용하게 하였으나 사용자들이 작품을 만지게 하는 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작품을 만지지 않도록 교육된 자들에게 예술작품 또는 유물, 그것이 닳아 없어지는 비누를 사용하게 하려니 그들의 신중함과 충돌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점점 닳아지고, 처음에 똑같았던 불상들은 각각 다른 provenance를 갖게 되었다.